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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 NC life

떠나오기 전의 이야기, 짐싸기, 선편으로 미국에 짐 보내기, 미국 도착

Salt&Pepper 2017. 8. 30. 17:47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이 포스팅은 오늘 만든 따끈따끈한 제 블로그의 첫 포스팅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  



떠나오기 전의 이야기 


12월에 약혼 비자를 받고 3월 말에 한국을 떠나왔습니다. 


보통이라면 '미국에 왔습니다' 라든가, '출국했습니다' 라는 표현을 쓰겠지만, '아예 한국을 떠나 미국땅에 평생 살러 떠나온 것'이라는 느낌이 '한국을 떠나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써봤습니다. 


비자가 나온 12월과 떠나오는 3월 말 사이에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더불어,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저는 '워커홀릭(Workaholic)' 이었으니까요. 아침 8시부터 밤 11시, 12시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 거의 5년을 쉼없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3달 뒤 한국을 떠난다는 게 결정되자, 더이상 할 일도 없어졌고(There's nothing I SHOULD do any more.) 1시간만 시간이 비어도 '아, 어떡하지? 뭘 하지?' 라고 서성거리며 불안증에 떨던 워커홀릭인 저는 3달이라는 '자유시간'을 손에 쥐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행..


그래서 1월과 2월에는 어마어마한 여행을 했습니다. 무려, 해외에 3-4주를 나가 있었어요. 같이 나가있을 사람도 마땅하지 않아 혼자 여행을 했는데,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워커홀릭 탈출 여행> 이라고 붙이고 싶네요. 그간 해외 여행은 일년에 2~5 차례로 뭐 '틈만나면 나간다'는 축에 끼었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어요. 


지금까지 여행이란 [일]-[여행]-[일] 이런 식으로 일과 일 사이에 잠시 쉬다 오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일일일일일]-[여행]-[잉여인간:무기한 백수] 으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랄까요. 어떻게 보면 [파트1: 한국에서의 삶]-[여행]-[파트2: 미국에서의 삶] 정도로 제 삶의 파트 1과 파트 2를 구분짓는 중요한 '쉼'이라고 볼 수도 있었고요. 


그래서 어디에 가 있었냐 하면, 태국과 캄보디아에 있었습니다. 


태국 Thailand 


1) 방콕 Bangkok 


25일 정도에 해당하는 비행기 티켓과 첫 3일에 해당하는 호텔만을 예약한 것 외에는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로 방콕에 도착했습니다. 호텔 수영장에서 놀고, 근처 쇼핑몰에 가서 쇼핑과 아이쇼핑을 무작위로 반복하고, 강가의 사원들도 둘러보고 매일 밤 야경이 볼만하다는 루프탑 바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방콕 수쿰빗 로드의 할리데이 인에 투숙한지 일주일쯤 되어가는 날, 우연히 근처 서점에서 태국 치앙라이 산위에 홀연히 자리잡은 리조트의 사진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로 합니다. 


2) 치앙라이 Chaing Rai 


그곳은 방콕에서 무려 버스로 13시간 반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치앙라이(Chiang Rai)였습니다. 치앙라이 내에서도 미얀마와 접한 산 꼭대기 위의 한 리조트였습니다. (Katiliya Mountain Resort and Spa) 


30평대 아파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넓직한 리조트 스위트는 산 꼭대기의 벼랑 끝에 위치해서 아침에는 산 밑에서부터 가득한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고, 사람이 없고 한적해서 마치 투숙객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착각을 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벼랑 위에 위치한 식당에서는 저녁을 먹으며 해가 지는 광경을 오래오래 볼 수 있었습니다. 발코니에서는 별들과 별자리들이 마치 빙글빙글 퍼붓듯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3) 치앙마이 Chiang Mai 


그렇게 다음 목적지는 버스로 2-3시간이 걸린 치앙마이(Chiang Mai). 


음, 전 세계의 히피와 IT와 태국 전통과 고양이들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곳이랄까. 

머무는 내내, 미소짓고 싶은 정겨운 느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사원들로 가득한 길거리를 걷다가 맛집과 마사지 집들을 순례하듯 드나들고, 코끼리와 진흙 목욕을 같이 하던 저는, 남쪽 방콕의 커리 맛과 이곳 북쪽 치앙마이의 커리 맛이 다른 것을 알아가던 3일 후 아쉽지만 치앙마이를 떠났습니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날 항공권을 미리 예약해 놨기 때문이어서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에서라면 1년쯤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애써 무시하고 1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와서 그날 밤 68층 루프탑에 위치한 시로코(Sirocco) 바에 들렀다가 다음날 캄보디아 시엠립(Siem Reap)으로 갑니다.  



캄보디아


무려 비행기로 50분 밖에 걸리지 않아 마치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정도의 거리였지만, 태국에 있다가 캄보디아에 가니 느낌이 또 달랐습니다. 태국, 특히 방콕은 여러번 가보기도 했고 그래도 동남아시아에서는 많이 경제가 발달한 곳이었지만 캄보디아는 내내 저를 반성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마르고 하얀 소들과 아이들이 흙길에서 같이 걷고 노는 곳, 

포장된 길이 없어서 늘 흙이 날리는 길에서 흙과 매연이 뒤섞인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곳, 

살림과 청결과 안전의 개념이 아직 없는 곳, 

수천년된 앙코르 와트 유적을 밥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1) 캄보디아 현지인의 집에 방문하다 


친구이자 머무는 내내 운전을 해주었던 T군의 집에 방문해 태어난 지 18일 된 아기를 보았습니다. 식당에 놓여 있는 싸구려 냅킨 두 장에 얇은 손수건이 아이의 기저귀였습니다. 


수십마리의 닭과 병아리와 싸움닭과 소와 개가 뒤죽박죽인 마당에서 열살 남짓한 남자 아이가 마당 수돗가에 앉아 쌈닭을 끌어앉고 맹물과 손으로 씻기고 있었고, 태어난지 18일 된 아기가 응가를 하자 수돗가에서 물에 엉덩이가 씻겨진 아이는 다시 싸구려 냅킨 두 장에 얇은 손수건으로 묶여지는 것을 보며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지 큰 양동이에 물을 끓여 수돗가의 찬물과 합쳐서 아이를 씻기는 모습에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이 듭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뭘 하고 있는거지?', '이렇게 가난한 나라와 도시를 구하기 위해 세계의 힘 있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거지?', '누가 뭘 해야 하는거지?'. '나는?'... 


2) 이유 없는 불평등


캄보디아 대학 졸업생들의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멋들어진 리조트에 왕족처럼 머무는 며칠 동안 정말 수도 없이 생각했던 건, 


"내가 이들보다 뭐가 더 나은 사람이길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걸까", 


"나는 정말 이들보다 잘난게 하나도 더 없는데 이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나는 이들에게 대접받으며 살아가는 위치에 있는 거지", 


"내가 정말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왔다면 이들의 삶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하는 거 아닐까?". 


"왜 나는 이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못해주는 사람인거지?" 였습니다. 


정말 어떻게 보면 이들 입장에서는 너무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게 분명한데, 이곳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박한 미소를 짓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3) 팔이 하나인 남자가 노 저어주는 배를 타고


Tonle Sap Lake에서 팔이 하나 없는 남자가 저어주는 배의 뒷자석에 편안히 앉아 멋진 야경을 보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2달러를 건네주었습니다. 조금 큰 배로 갈아탄 후에는 호수의 가운데로 나아가 선셋을 구경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만 해가 지는 아름다운 호수의 한 가운데에서 저는 조금 울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아름답지만, 너무 슬픈 곳이었어요. 슬퍼서 괴로운 곳이었습니다. 팔을 잃고도 우리같은 관광객의 배를 서서 저어야 하는 사람과, 이런 사람들의 노동으로 아름다운 선셋을 구경하는 우리같은 관광객들. 머리 속에는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괜히 더 미안하고, 더 괴로웠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설 연휴여서 친척들에게 미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3월에는 한 달 내내 커다란 이민용 짐가방 두개를 거실에 늘어놓고 집을 탈탈 털어 짐을 싸고, 미국으로 보낼 짐을 부치고, 친구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짐 싸기 


당시 저는 한국 나이로 33살, 여자인데다 짐을 버리는 성격이 아닙니다. 정리할 물건과 옷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짐가방을 싸고 정리하는 데 무려 3주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 과정을 100% 도와준 건 바로 남자친구인 S군. 


정리벽이 있는 S군은 우리 집에 와서 


"오늘은 코트 류를 하자. 코트를 다 꺼내", " 30개네. 가져갈 거를 15개로 추리자." 라고 합니다. 


저는 대략 25개 정도로 추립니다. 그럼 S군은 다시, 


"아주 자주 입는 거, 종종 입는 거, 가끔 입는 거, 아예 잘 안 입는거로 구분해봐 그럼." 이라고 해서 


저는 각각 뭐 5, 8, 7, 5 개 정도로 구분하면 


"이 중에서 10개를 놓고가야 하니까 아주 자주 입는거 5개는 다 가져가고 종종 입는거 8개 에서 두개를 빼고, 가끔 입는거에서 3개 빼고, 아예 안 입는거는 다 놓고가자." 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정한 15개에서 짐가방에 넣어서 같이 비행기 타고 갈 것 2-3개, 나머지는 선편으로 보낼 박스에 넣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우체국 택배로 15키로짜리 박스 하나를 보낸다고 했을 때 7-8만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두세개를 보내면 금방 20만원이 넘게 나옵니다. 그래서 최대한 짐을 줄이고, 또 옷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진공팩에 넣어서 박스에 넣었습니다. 큰 마트에 가면 진공팩을 1000-3000원 정도에 살 수 있어서 최대한 진공팩에 넣었습니다. 


정정: S군이 넣었습니다. (정리벽이 있는 S군은 제가 넣도록 놔두지 않더군요.)


그리고 놓고 가는 옷들은 또 '버리는 것'과 '놔둘 것'을 구분했어요.



그리고 다음날은 원피스, 그 다음 날은 블라우스와 티셔츠, 그 다음날은 자켓, 그 다음날은 바지와 치마.... 

저녁쯤 S군이 우리 집으로 와서 그날치 일을 마치면 새벽.  건너뛴 날도 있어서 옷만 싸고 박스 포장하는데 2주가 걸렸어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져갈 것과 안 가져갈 것을 끊임없이 고르는 것 자체가.  


그리고 우리가 만든 리스트- 박스를 선편으로 총 5개를 보냈는데 각 박스 안에 들어 있는 물품 종류와 개수를 그때 그때 적어놓았더니 마음이 든든하더라고요. 선편으로 박스를 보낼 시에는 트랙킹이 되지 않으니, 만약 없어져도 이렇게 리스트를 적어 놓으면 적어도 뭐가 없어졌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무튼, S군에게 감사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저는 결정 장애가 있는데다 뭘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아마 뭘 놓고 오거나 버리고 와야 한다는 이런 결정이 포함된 이런 마음 아픈 짐싸기는 아마 절대 시간 내에 끝내지 못했을 거예요. 



우체국을 통해 선편으로 미국에 짐 보내는 방법


1) 우체국에 가서 박스를 사옵니다.

 

   나라마다 선편으로 보낼 수 있는 박스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저희는 5호로 받아왔어요. 사과 박스 사이즈 입니다. 가격은 몇백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2) 박스 겉면에 붙일 라벨에 기입하는 방법


(1) 보내는 사람(영문) :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영문으로 작성합니다. 선편으로 보내는 경우 트래킹이 불가능하고, 부친 시점에서 2-3달 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집에 사람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세번 정도 방문 했는데 수령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한국으로 반송이 됩니다. 따라서 이 주소는 반송 받을 주소를 적어주시는 것이 좋아요. 전화번호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반송될 수 있는 박스에 대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번호를 적으세요.  


(2) 받는 사람(영문): 박스 받을 곳의 주소, 이름, 전화번호를 씁니다. 미국의 주소의 경우 우편번호(5자리)까지 꼭 써야합니다.


(3) Itemized List of Contents(내용품명): 이 곳은 박스를 열어봤을 때를 대비해 너무 거짓으로 적어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부담가지고 있는 그대로 다 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대략, <Clothes, shoes, documents> 이런 식으로 적었어요. 


(4) Gift (선물) 선택 : 중요합니다. Gift 를 선택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야합니다. 그냥, 자기 물건이지만, 그래도 무조건 gift를 선택하라고 우체국 직원이 말해주었습니다. 


(5) 배달 불능의 경우 다음과 같이 처리해 버림: Treat as abandonded(포기) 와 Return immediately to sender(발송인에게 즉시 반송) 항목 중에서 배송이 불능되었을 때 그 물건이 버려지길 원하시면 전자를, 내 물건이 온전히 다시 한국에라도 돌아가길 원한다-라고 생각하시면 '발송인에게 즉시 반송'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돌아갈 때도 2-3달이 걸립니다. 


(6) Return/Redirect(반송/전송편): 미국에서 보내지는 5호 박스의 경우, 무조건 by surface(선편)밖에 선택권이 없다고 합니다. 선편 선택하시면 됩니다. 


(7) 오른 편에서는 개수와 가격만 작성하시면 됩니다. [개수]는 위의 내용 품명과 마찬가지로 너무 거짓으로 적어도 안되지만, 대~충 기입하면 됩니다. 생각나는 숫자를 적으세요.  [가격]은 130불 정도가 넘으면 세금을 내야한다고 알고 있어요. 100 이하로 생각나는 숫자 적으시면 될듯 해요. 100, 75, 30 마음대로 적으셔도 됩니다. 

 


출국 하는 날의 이야기 


혹시 가족의 배웅을 받고 나가신다면, 그리고 그 가족 중에 엄마가 있다면:  

공항에 갈 때 1) 많은 양의 티슈 또는 손수건 2) 엄마의 썬글라스 를 꼭 가져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출국장에 들어가는 줄을 서기 전 엄마랑 인사를 하는 데, 엄마가 저를 안아주시다가 폭풍 울음이 터지셨습니다. 저도 따라서 폭풍 눈물이 흘렀어요. 태어나서 엄마가 그렇게 우시는 거 처음 봤어요. 머리가 띵 해질 정도로 눈물이 납니다. 꼭 티슈, 손수건! 챙기세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서도, 면세점에서 폭풍 쇼핑을 하면서도,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 엄마가 마지막에 하는 말과 우시는 모습이 생생했습니다. '헉, 내가 무슨 짓을 벌인거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미 미국행 비행기를 타버린걸요. "잘 살게. 울지마, 엄마!" 라고 말할 수도 없는 태평양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미국 도착


Denver를 경유하여 18시간 만에 RDU(Raleigh-Durham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합니다. Raleigh(랄리)는 미국의 동남부에 위치한 North Carolina의 수도입니다. 


S군의 부모님께서 마중을 나오셨어요. 5년 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롯데월드에 처음 온 어린 아이마냥 감격하고 신난 모습이었어요. 부모님이 사시는 도시로 가서 일단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운전하여 드디어, 


Fayetteville, North Carolina(페이엣빌, 노스 캐롤라이나) 도착


이게 오늘 포스팅의 끝입니다. 가는 길에 저는 24시간 drive thru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 세트를 사먹었다지요. 미국에 첫 발을 디디고 새벽 2시에 치즈버거 세트를 와구와구 잘 먹는 저를 S군의 부모님은 흡족해 하시며 바라보셨어요. 역시 미국은 맥날이지요! ㅎㅎ 다음 포스팅에서는 Fayetteville, NC 의 정착기를 들려드릴게요. :D 


※ 혹시 미국 이민 과정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문의해 주세요. 그 부분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할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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